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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리뷰] 걱정 마, 잘될 거야 - 어디선가 들리는 마리코의 기도

※주의: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퇴사할 때 다정한 팀원 한 분이 내게 선물해 준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책. 

잔잔하면서도 씁쓸한 마음도 들게 하는 그런 류의 만화, 내가 좋아하는 톤이라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번역된 버전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문장력에 감탄하곤 했다.

 

1.

"쬐~금 열린 창문으로 산들바람 정도는 계속 불어오면서 공기는 바뀐다"

 

2.

한 페이지에 8칸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는 형태. 의미비중에 상관없이 모든 칸의 크기가 같다.

다른 일본 출판만화들과 마찬가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도록 되어있다.

에피소드 형식이며, 한 에피소드에 일률적으로 6페이지를 할애한다.

 

3. 

스토리 전개 면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른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본 바를 각 에피소드로 전개하는 방식을 취해서 독자로 하여금 보다 입체적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 이를 통해서 독자는 캐릭터 저마다의 이유와 상황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입체적인 구성을 더욱 확대하여, 에피소드들이 이 만화 전체에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하며, 마지막에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4.

연출 면에서는,

어떤 요소보다도 칸 안에 있는 세 주인공의 독백에 집중하게 만드는 구성. 독자들의 시선흐름이 주인공의 독백에 먼저갔다가 나머지 대사와 그림에 집중하도록 했다. 주인공의 심리를 담담하게 묘사하는 독백 대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흑백 컬러에 평면적으로 그린 얼굴들. 명암처리 없고, 단조로운 표정의 얼굴들.

우선 신체 움직임의 묘사도 부정확하고, 대사가 없으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건지 파악할 수 없는 장면도 있었다. 표정은 눈썹 끝이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또는 입매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통해서 간단하게 묘사한다. 

 

5.

만화에는 세 명의 마리코가 등장한다. 세 명의 마리코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근무연차는 각각 2년, 12년, 20년이다.

신입과 베테랑의 연차는 10배 차이가 나지만, 이 셋 모두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고 있다. 자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사회생활에 대해 회의를 가지면서 말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어려운 이유는 내가 나여서일까, 여자여서일까? 내가 경험이 없어서일까? 이 정도 나이의 여자는 승진은 꿈꾸지도 못하는 거겠지? 내게 빛날 기회는 남아있지 않겠지?

 

6.

서로에게 신경쓰이는 존재인 각각의 마리코. 무의식적으로 다른 마리코는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서로를 깎아내리면서도, 동질감을 느끼고, 이 사회의 현실에 씁쓸함을 느끼는 것이다.  

 

작가가 여성으로서 느낀 사회에서의 불편함과 그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지만 쉽사리 답을 얻지 못했던, 막연히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도 뛰어난 통찰력으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책의 제목은 "걱정 마, 잘될 거야"라서 뜨뜨미지근한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는 줄로 알았다. 끝까지 읽어보니, 잘될 거라는 위로의 말에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작은 변화의 존재를 깨닫고, 이에 동참할 것. 당신은 곧 나이고, 나는 곧 당신이므로 우리의 연대가 우리 모두가 처해있는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